실시간 뉴스



MB정부 방통위, '정치기관' 이미지 추락


[MB정부 통신 5년, 평가와 교훈-3]정책능력 낙제점, 주무부처가 인터넷시대 '역주행'

[강호성기자] 지난 2008년 6월 서울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OECD장관회의가 개최됐다. OECD 회원국의 장관급 정부대표를 비롯해 신흥강국으로 부상중인 11개 비회원국 대표들, 세계 최대 IT 기업 CEO들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MB 정권 출범 후 석 달만에 열린 글로벌 행사로, '인터넷 경제'의 나아갈 방향과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주최국인 우리나라와 참가국 대표들은 10년전 캐나다 오타와 회의에 이어 서울회의에서 인터넷경제의 중요성과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서울선언문'을 채택해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서울선언문은 인터넷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인터넷 경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네트워크·기기·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촉진하는 한편, 인터넷을 이용한 창의적인 활동이 증진될 수 있도록 각국이 노력하자는 의지를 모아냄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서울선언문 속에 담긴 철학과 달리 현 정권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곱지 않았다. 정부의 인터넷정책은 부정확한 정보 유포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 부작용에 더 방점을 두었다. 인터넷이 정권을 공격하는 근원지로 보는 듯 네티즌을 바라보는 시각은 차갑기만 했다.

◆'인터넷 바로보기' 미흡

그래서인지 인터넷관련 정책은 뒷걸음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치·사회의 소통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이들에게 '미네르바 사건'은 정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통제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줬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사이버모욕죄 도입 시도, 모니터링제도 강화, 통신사의 감청장치 의무화나 영장없이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통신비밀보호법 및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대해 인터넷 시대를 '역주행'했다고 말한다.

각종 법률은 해당부처가 제각각 소관하고 있지만, 인터넷규제(진흥) 정책의 총괄기관인 방통위가 정부 내부의 정책 조율에 성공적이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에 끌려 다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9월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인터넷 자유(Freedom on the Net)'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조사 대상 47개국 중 16위로 분류했다. 이는 앞선 조사 9위에서 7계단 떨어진 것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접근 장애 ▲콘텐츠 제한 ▲이용자 권리 침해 등 3개 항목을 기준으로 조사했고 우리는 우간다, 멕시코와 같은 그룹에 속했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인터넷 규제가 현저하게 늘었을 뿐 아니라 일부 블로거들이 체포되는 등 이용자 권리 제한도 심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표현의 장으로서 인터넷 뿐만 아니라 통신의 미래형 수단으로서 인터넷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100년 동안 이어져온 일반전화(PSTN)는 지난 몇 년 새 자취를 찾기 어렵게 변하고 있다. 그 자리는 인터넷전화(VoIP)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무선전화 역시 인터넷전화(mVoIP) 시대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는 조 단위 투자를 통신사에 요구하고, 대신 수익을 보장해주던 기존 통신정책을 전환시켜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 데이터(인터넷) 시대 통신산업에 대한 구조개편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통신사들은 수익이 고꾸라져서 힘들고, 이용자들은 더 싸고 편리한 서비스 이용을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담당자는 "MB 이전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인프라, 플랫폼, 콘텐츠별) 지배력의 전이를 막고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수평규제 논의를 진전시켰다면, 전문기관으로서 인터넷 시대에 적절한 가시적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차기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법원조차 "정당성·공정성 의심할 만"

정책당국의 전문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지난 9월6일 서울행정법원은 참여연대가 '휴대전화 요금 원가를 공개하라'며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가 산정 자료를 공개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5월 참여연대는 이통 3사가 책정한 통신요금 거품이 심하다며 이통요금 원가와 요금 산정 관련 자료, 이통요금 인하 논의와 관련한 방통위 회의록 등을 공개하라고 청구한 바 있다.

참여연대의 청구에 대해 방통위는 "통신사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 다수 포함됐다"며 비공개를 결정했지만, 법원은 방통위가 비공개 결정한 정보의 대부분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가계통신비 증가 원인으로 통신사들의 마케팅 경쟁 및 과점적 시장 구조, 통신3사의 과도한 영업이익 등이 여러 차례 지적됐고, 통신요금 인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며 "방통위가 통신3사에 대한 감독권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서비스 내용 및 요금이 어떻게 책정됐는지의 정보를 공개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방통위 업무수행 과정의 투명성·공정성·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크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판결이 나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국민이 아닌 통신 재벌을 비호하는 일에만 앞장서온 방통위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모든 국민과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방통위로서는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 규제권한을 행사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방통위의 업무수행과정이 의혹을 살 만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과징금의 경중문제나 정치적 가치판단의 사안도 아닌 통신요금 문제와 관련, 주무당국이 국민으로부터 투명성·공정성·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음으로써 그 신뢰도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끌려다니는 전문기관

방통위는 정책결정의 두뇌인 상임위원회가 '정치공학적'으로 활동하면서 통신·인터넷·방송 할 것 없이 전문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른바 '소셜댓글'이 활성화함으로써 무용지물이 된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조차 스스로 없애지 못했다.

2011년 9월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며, 재검토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적절한 시기에 폐지의 수순을 밟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지만, 인터넷실명제는 2012년 8월23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막을 내린다.

헌재는 실명제 폐지와 관련,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 게시판 상 불법 정보 게시 억제 및 건전한 문화 조성 등을 위한 것이지만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제재수단은 충분하다"며 "모든 게시판 이용자를 규제대상으로 정하면서 정보의 단순열람자까지 포함해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밝혔다.

이어 "게시판 운영자에게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무기한 보관토록 하는 등 입법 목적 달성에 있어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규제"라며 "표현의 자유 또한 침해할 뿐 아니라 입법 목적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불법 게시물 감소 등 의미있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찾을 수 없다"는 등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다.

방통위는 방송시장에서도 케이블TV 진영과 지상파의 콘텐츠 재송신을 둘러싼 소송전에도 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업계에서는 "법원 판결로 해결될 문제들이라면 방통위의 존재 이유는 없다"고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상파 의무재송신 채널 선정작업 역시 대선을 앞두고 서랍 속에 머물러 있다. 정책당국으로서의 해결사 노릇에 소극적인 모습인 셈이다.

한 미디어정책 전문가는 "전문기관이지만 업계에 생긴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정치적 관점으로 풀거나 적절한 대응시기를 놓침으로써 끌려다닌 모습을 보이게 됐다"며 "그럼으로써 정책기관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전문성도 의심받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MB정부 방통위, '정치기관' 이미지 추락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