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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타 잃은 IT 기술자들-하]눈앞서 관리하려는 생각 버려야


정보기술(IT) 인력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선 발주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술 인력들을 '등급'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머릿수 세기' 발주 관행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릿수 세기 방식은 개발해 놓은 성과물의 '완성도' 보다는 투입 인력의 수를 규제함으로써 정보화 프로젝트를 관리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발주하는 곳이나 수행하는 곳 모두 부담을 떠안게 된다. 발주처는 한 달에 몇 명씩 프로젝트에 매달리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일정 인력을 항상 파견해야 하는 IT 서비스 업체 입장에서도 고급 인력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된다.

IT 서비스 업계는 물론 정부까지도 이같은 머릿수 세기 관행은 "비효율적이고 생산성만 떨어지는 고루한 방식"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내 눈에 보이데서 일하라?"

머릿수 세기 관행이 계속되는 것은 정보화 프로젝트 발주자들이 IT 기술 인력들을 '눈 앞에' 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업 발주자들은 개발 업체와 계약을 할 때 계약서에 '발주처 인근 4km내에서 개발을 한다'는 조항을 넣고 있다. '4km 내'란 단서조항은 때로 발주자 사무실 내, 혹은 '인근' 등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마디로 개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뜻이다.

꼭 업체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과업 내용이 바뀌는 데다 시스템을 사용할 현장 실무자들과 수시로 의견 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IT 감사 매뉴얼'에도 개발 인력 투입 수량을 체크하는 항목이 있어, 발주사들은 감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지켜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보화전략계획(ISP) 및 업무 분석설계를 수립한 뒤 여기에 기반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관계자는 "분석 설계를 철저히 해 사전 준비 형태의 사업이 되면 굳이 머릿수 세기를 강조할 필요없이 준비된 프로세스에 따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머릿수를 따지지 않게 되면 무조건 발주사 근처에서 개발하도록 하는 관행도 없앨 수 있다.

지식경제부도 이같은 내용에 공감, 지경부 뿐 아니라 우정사업본부, 한국전력, 에너지관리공단 등의 정보화 프로젝트를 원격지 개발로 하도록 시범 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지식경제부 소프트웨어산업과 김동혁 과장은 "프로세스에 의해 사업이 관리되고 산출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원격지에서 개발해도 무리가 없다"고 전했다.

◆현대정보의 베트남은행 정보화 사업 원격개발 사례

현대정보기술은 대형 해외 금융 정보화 사업을 국내에서 원격지 개발로 추진해 관심을 모았다. 베트남 최대 은행인 국영 베트남 농협은행(VBARD)의 '금융 현대화를 위한 시스템 통합(SI)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AP)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낸것.

이 사업은 계정계와 정보계 기능 향상 및 1천여개 지점으로의 시스템 확산 등으로 이뤄진 대형 프로젝트였지만 현대정보기술은 한국에서 개발작업을 해냈다.

일부 프로젝트 관리자만 베트남에 상주하고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국내에서 시스템을 개발해 베트남으로 공급한 것.

비용 역시 머릿수 대신 '기능 점수'에 따라 계산했다. 여신, 수신 등의 업무 단위별 개발 단가를 적용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지급 방식계약도 적용됐다.

하드웨어, 기간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및 시스템 통합 등으로 개발 업무를 세분화 해 분리발주를 함으로써 합리적인 계약 금액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현대정보기술의 자평이다.

현대정보기술 관계자는 "이같은 대형 사업을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했다면 인력 체제 비용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고, 우리도 고급 인력의 장기 해외 파견으로 인해 인력 공동화 현상을 겪었을 것"이라면서 "원격지 개발을 통해 인력 효율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어 발주사와 사업자 모두 만족한 프로젝트였다"고 설명했다.

◆정보화 사업, 당사자가 '더 잘 알아야'

하지만 이같은 원격지 개발을 하려면 정보화 사업에 대한 '분석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 지경부 김동혁 과장 역시 "분석 설계가 선행되지 않으면 원격지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추진되는 정보화 프로젝트 중 사전에 분석 설계를 시행하는 곳은 많이 않다. 전문 인력을 용역으로 고용해 외주로 시스템을 개발하는 마당에 발주사 실무자들이 이를 일일이 알아두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자 외에 또 다른 전문가 그룹에 의한 '프로젝트 관리'가 이뤄져야 원격지 개발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일본의 경우 정보화 프로젝트를 할 때는 먼저 전문 컨설턴트로 구성된 PMO(프로젝트 관리 조직) 그룹이 사전 분석 설계와 제안서 평가, 프로젝트 추진 일정 등을 검토하고 컨설팅 한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담당한 삼성SDS 측은 "일본에도 기술자 등급 및 인력 고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PMO 그룹을 통해 미리 설계가 돼 있어 원격지 개발은 물론, 사업 성과도 기능 점수(FP) 방식으로 산정해 평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전문가 집단의 PMO 그룹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 현재로서는 외국계 컨설팅 업체들이 산발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자칫 PMO를 통한 분석 설계 활성화를 추진하면 '외산 기업 몰아주기' 등으로 정부가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 용역' 정도로 평가절하 돼 있는 IT 서비스 개발 인력들을 고급 컨설팅 인력으로 키우려면 분석 설계 및 사전 평가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다.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 평가 표준안을 개발하고 있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관계자는 "외국 업체들이 당분간 설계 컨설팅을 선점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시장이 형성돼야 국내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컨설팅 인력 양성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할 발주해야 기능 점수로 성과 평가 가능

업무별로 잘개 쪼개 진행 상황을 문서화 하고 이의 변경을 체크하는 분석 설계가 활성화 되면 업무별로 분할 발주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금껏 '000 정보화 사업' 등의 명목으로 대형 IT 서비스업체들이 일괄수주했던 형태에서 중소 업체나 소프트웨어 패키지 공급 업체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찾아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업무별로 개발되기 때문에 사업 성과를 더이상 머릿수가 아닌, 기능 점수로 평가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

문제는 발주사들이 이같은 노력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전문성도 떨어지는데다 비용도 더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공기관의 경우 기관에 배치된 정보화 담당관이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개발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고 정보화 프로젝트에 대해 심도있게 알기도 쉽지 않다.

이에 정부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을 통해 프로젝트 현장에 전문 컨설턴트를 파견, 현장 용역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진흥원 측은 "이를 통해 분리 발주 및 분할 발주를 보다 활성화 하고 발주사의 발주 관행을 재정립 하도록 하나씩 고쳐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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