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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항구] ㊳신안 하의면 옥도항


청일전쟁 때 일본군 주둔

[아이뉴스24 대성수 기자] 전남 신안군은 다이아몬드 제도로도 불린다. 군을 형성하는 1천여개가 넘는 섬들이 마름모꼴 형태로 산재돼 있기 때문이다.

하의면 옥도는 이 마름모꼴의 중심 해역에 위치한다. 비금, 도초, 하의, 장산, 안좌도 등이 주변을 에워싸듯 자리하고 옥도는 이들 섬의 중간에 홀로 떠 있다.

이런 지리적 위치와 특징으로 예전부터 ‘팔구포’로 불렸다. 옥도를 중심으로 바닷길이 8곳으로 열려 있어 다른 바다로 빠져나가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옥도항 전경 [사진=서해해경청]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옥도항 전경 [사진=서해해경청]

이 같은 접근성의 편의는 1800년대 말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옥도에 주둔했던 이유가 됐다. 당시 일본은 이곳에 우물을 파고 해군기지를 건설해 중국 함대와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일본 해군기지로의 활용이 언제까지 지속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파놓은 목욕시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말한다.

송홍님 할아버지(82·큰마을)와 송영주 할아버지(80·큰마을)는 “섬의 동쪽 사면의 산발치에 항상 물이 고이는 샘이 있고, 마을 사람들은 일하다 목이 마르면 이곳에서 물을 마셨다”며 “왜정 때는 이 샘 아래에 일본군들이 콘크리트로 연못을 만들어 놓고 목욕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같은 목욕시설(가로 약 5m, 세로 약 1.5m의 수조시설)은 ‘일본해군정’으로 불리는 샘 아래에 현재까지 분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일제강점기에 축조 또는 이후 보수됐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옥도에는 현재까지 일본군의 목욕시설이 남아있다. [사진=서해해경청]
옥도에는 현재까지 일본군의 목욕시설이 남아있다. [사진=서해해경청]

일본군의 ‘목욕시설’이 남아있을 만큼 옥도는 여타의 섬들과는 달리 물이 풍부하고 물맛 또한 좋다고 한다.

윤귀월씨(76·큰마을)는 “옥도는 지하수를 파서 실패한 적이 없는 곳이라 가뭄에 물이 부족하면 인근 하의도에서 물을 길러 올 정도로 물이 잘 나오는 섬”이라고 말했다.

팔구포로 불릴 만큼 사통팔달의 해역에 위치하고 물이 풍부해 살기 좋은 섬이지만 옥도의 교통편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목포와 연결되는 차도선은 하루 2회 운항되지만 뭍으로 나갈 때는 하의도까지 돌아서 나가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하지만 주변에 큰 섬이 많고 이들 섬의 길목에 위치했기에 여객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옥도 토박이인 송상호씨(76·큰마을)는 “40여 년 전 옥도와 인근 섬을 운항하던 여객선은 목포까지 4~5시간가량이 소요됐다”며 “현재와 같은 차도선이 다닌 지는 20여년 가량 된다”고 말했다.

신안군 하의면 옥도를 취항하는 철부선의 운항 시간표 [사진=서해해경청]
신안군 하의면 옥도를 취항하는 철부선의 운항 시간표 [사진=서해해경청]

1970년대 당시, 옥도는 선생님이 5명이 있고 아이들도 120~130명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었다. 때문에 당시 섬에는 술집을 비롯해 속칭 전빵이라고 불리던 구멍가게가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옥도의 경우 물이 풍부해 비교적 논농사도 많이 지었지만 고구마가 주식이었다. 고구마의 경우 온도가 변하면 썩기 때문에 겨울에는 방안에 짚으로 넓고 기다란 사각형 모양의 ‘두대통’을 만들어 고구마를 보관했다. 이렇게 하면 5월까지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안=대성수 기자(ds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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