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만 규제해서 될 일?"…'시행 100일' 중대재해법, 곳곳서 '불만'


실효성 의문 속 '유령 법안' 비판 쏟아져…재계 '법 개정' 요구에 인수위 꿈틀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아무리 지적해도 일부 숙련공들이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하면서 지침을 지키지 않아 걱정입니다. 기업들만 자꾸 규제한다고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요?"

경북 포항시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몇몇 직원들이 가끔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고 일을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고 말했다. 감독관이 여러 번 지적했지만 자기 고집대로 일하는 이들 때문에 조직 분위기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안전·보건 관리를 소홀히 해 인명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됐지만 기업들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경제계의 계속된 지적에도 보완 입법 없이 법 규정이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안전·보건 관리를 소홀히 해 인명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됐다. [사진=아이뉴스24 DB]

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를 포함한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인 1년 이상 징역형, 법인에 대한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중첩해 부여하고 있다. 이미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웬만한 재해 예방에 대한 규정을 정해 놓고 있는 만큼 재계에선 중대재해법을 두고 '경영 책임자를 위한 처벌'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산안법은 사고 발생 시 대표자,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 등 관련자를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는 개방적 구조라면 중대재해법은 오직 경영책임자에게만 처벌을 가하는 폐쇄적 구조"라며 "안전·보건 의무 미이행이라는 부작위(不作爲)에 대한 벌금·징역형인 만큼 준수 범위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수사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 논란도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 책임자를 CEO(최고경영자) 또는 CSO(최고안전관리책임자)로 특정하지 않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부분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경영 책임자 개념에 대한 모호성 때문에 CSO가 있더라도 CEO 면책이 어려울 수 있고 더 나아가 기업의 실제 소유주 처벌까지도 열려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책임자에 책임을 물을 경우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CEO가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이에 따라 '경영 마비'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며 "처벌을 받게 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 내지는 '사고 회사'라는 낙인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 소방과 경찰 등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의 기대와 다르게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곳곳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의 재해 사망사고 발생 건수가 법 시행 이전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시행 100일간 중대재해는 38건, 사망자는 45명, 입건된 경영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70명으로 시행 이전과 큰 차이는 없다.

1분기 월별 사망자는 ▲1월 54명 ▲2월 44명 ▲3월 59명 등 총 15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8명 줄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에서 78명(49.7%), 제조업에서 51명(32.5%), 기타업종에서는 28명(17.8%)의 사망자가 나왔다. 특히 제조업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44명) 대비 7명 늘어난 탓에 제조업 사망자 비중 역시 지난해 26.7%에서 올해 32.5%로 증가했다.

재해 유형별로는 추락 56명(35.7%), 끼임 21명(13.4%)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인한 재래형 사고 비중이 전체의 49.1%를 차지했다.

사고 원인은 작업절차·기준 미수립 59건(25.3%), 안전난간 등 추락방지조치 미실시 40건(17.2%), 위험기계·기구 안전조치 미실시 29건(12.4%) 순으로 나타났다.

권기섭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매년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건설업은 작년 하반기부터 감소 추세가 이어지면서 올해 1분기 처음으로 업종별 사망사고 비중이 50% 미만(49.7%)으로 떨어졌다"며 "반면 제조업은 올해 1분기에 사망사고가 크게 늘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대상인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 사망사고는 57건(69명)으로,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고는 38건(45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51건(52명) 대비 소폭(13건) 감소한 수준이지만, 법 시행에 따른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의 안전·보건 의식이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중대재해법 수사는 경영책임자의 안전의무 위반 여부를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적정한 수사 인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전담 수사 인력은 제대로 충원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00일간 노동당국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기업이 20곳이 넘지만, 기소나 처벌 사례도 아직 한 건이 없다는 점에서도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많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유령 법안'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사진=조은수 기자]

일각에선 대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산업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려 안전 장치를 마련했지만,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전국 중소제조업체 50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 법의 의무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곳은 50.6%에 불과했다. '일부 모르고 있다'는 응답이 48.0%, '거의 모르고 있다'는 답변은 1.4%였다.

특히 종사자 수 50∼99인 규모 기업의 경우 60.4%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을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코스닥협회가 올 초 국내 7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법 시행 후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94.6%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가장 큰 애로사항은 '모호한 법조항(43.2%)'을 꼽았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77.5%(다소 과도 43.7%, 매우 과도 33.8%)였다. 또 과도하다고 답한 응답자의 94.6%는 추후 법 개정 또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탓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 역시 중대재해법의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선 고용부가 법 시행이 얼마 되지 않아 개정은 어렵지만,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시행령 개정·보완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 발표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산업 현장에 맞는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 시행 초기라 아직 수사기관에서 규정 해석 및 적용을 어떻게 할지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지만, 벌써부터 시장에선 위헌소송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형벌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란 지적이 많다"며 "이는 실제 법 집행 과정에서 계속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아직 법 시행 후 반기가 지나지 않아 당장 경영책임자의 반기 1회 이상 점검 의무 위반 등을 문제 삼기 어려울지라도, 기업들은 올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 해당 의무 준수를 위한 업무 체계 및 프로세스를 갖추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특히 재해예방을 위해 필요한 예산 편성, 집행이나 안전보건 전문인력 배치 의무 등은 곧바로 규정 위반이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경영책임자 및 본사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챙겨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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