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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과학기술정책이 양치기소년에서 탈피하려면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과학기술계를 뒤흔들었던 작년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혼란에 대한 정부의 변화된 대응이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정부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는데, 예산 증액뿐만 아니라 정책의 변화와 과학기술계의 구조조정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임기 중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혁신적·도전적인 연구개발은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연초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연일 R&D 예산 증액이 강조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이 과학담당기자들을 일부러 찾아와서 "예산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기재부 예산실장까지 출연연을 방문해 "R&D 혁신"과 "출연연 육성"을 말하는 행보를 보면 정부 내에서 R&D 정책을 다루는 기조가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예산 증액 공언 외에도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16년 만에 공공기관에서 제외한 조치나, 과기정통부의 세 차관을 동시에 교체하는 모습도 새로운 분위기 조성에 한 몫하고 있다. R&D 예산 삭감으로 흉흉해진 과학기술계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성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작년의 예산 삭감으로 인한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당장 연구비 가뭄에 맞닥뜨린 과학기술계의 불안은 여전하다. 예산 증액이라는 약속은 아직은 말 뿐이다.

'R&D 혁신'을 위해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식상한 면이 있다. '선도형 R&D'나 '혁신·도전' 같은 구호는 예전부터 사용되어온 것으로, 이것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실행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부족한 상황이다.

과거부터 과학기술정책은 매번 똑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 혁신과 도전이라는 단어들은 자주 사용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한정적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한국형 다르파'는 되는 것도 없이 때만 되면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R&D 예산 삭감의 명분으로 다시 동원됐지만 이러한 접근이 실질적인 혁신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외쳐도 변하는 게 없다는 것은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산학연관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고 멈춰 서 있다는 방증이다.

과기정통부는 어제(14일)도 '최초·최고에 도전하는 R&D에 정부투자 대폭 늘린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2025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을 발표했는데, 네 쪽 짜리에 불과한 이 보도자료에도 '선도'는 15회, '혁신'은 10회, '도전'은 9회나 등장하지만 수십년 동안 반복된 구호성 정책을 지켜봐 온 연구자들의 가슴에 와 닿을 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에는 또한 과기정통부,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방위사업청 등이 모여 '혁신도전형 국가R&D사업 협의체'라는 것도 출범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사업들 대부분이 지난 정부에서부터 이어온 사업이라는 것을 봐도 혁신·도전이 얼마나 해묵은 키워드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기정책이 양치기소년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연구자 중심'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진정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 연구자들의 의욕을 끌어올리고, 보상을 제공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거창한 구호보다 차라리 작지만 손에 잡히는 정책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건 어떨까. 직무발명보상에 대한 소득세 과세 문제나 연구원 정년 환원 같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부터 정부가 해결의지를 보인다면 사기진작이나 신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은 변화들이 실질적인 혁신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패권 대응이라는 국가적 미션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이 실질적으로 국가전략수립에 참여하고 과기정책을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에도 정부가 진심을 보여야 한다. 이제는 제발 민관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인 회의체 하나 만들고 흐지부지되는 모습은 안봤으면 좋겠다.

총선을 앞두고,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과학기술계는 올해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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