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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24> 불신보다 신뢰가 필요하다


예전에 요양시설 운영자들끼리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있었다. 첫번째 관리대상이 보호자, 두번째가 직원 관리, 세번째가 시설 관리, 네번째가 어르신 관리라는 것이다. 보호자가 걸어오는 소송, 직원들의 고발, 이곳 저곳에서 실시하는 시설점검에 대응하다 보면 어르신은 뒷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하나가 더 붙었다. 건보에서 실시하는 평가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재가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방문요양센터들은 3년 마다 실시하는 건보 평가를 앞두고 피가 마른다고들 한다.

쉽게 얘기하면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인력파견업체라고도 할 수 있다. 전국에 2만 개가 넘으며 한 센터 당 어르신을 15명 이내로 관리하는 소규모 기관들이 대부분이다.

동네 편의점, 약국 만큼이나 늘어난 것이 방문요양센터인데 최근에는 많은 곳이 문을 닫고 있다.

따라서 건보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한 센터들은 더욱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문을 닫게 되리라는 것이다. 올해 5월을 기점으로 방문요양센터의 30~50%가 문을 닫으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가요양서비스 분야에서 큰 지각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이미 예고가 돼 왔었다. 그 동안 진입문턱이 없어 누구라도 쉽게 문을 열 수 있었던 재가요양센터의 난립이 요양보호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져 왔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재가서비스기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함을 계속 천명해 왔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요양보호사 인건비 규정, 재무회계 적용이다. 이를 준수하기 어려운 20인 이하 소규모 센터들은 현재 폐업준비를 하거나 몇몇 기관들이 통폐합을 시도하고 있다.

폐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3년 간의 운영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문서 작업이 취약한 소규모센터장들이 환수 위기에 처해, 폐업컨설팅을 받는다는 이야기마저 전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입장에 따라 이야기들이 달라진다.

'자업자득'이라는 시각 그 동안 일부 재가요양센터의 일탈이 전체 요양서비스 생태계를 흐려놓은 측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대상자를 확보하기 위해 자기부담금(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15%의 자부담을 해야 한다)을 면제해 주고 대신 요양보호사의 인건비를 깎는 식의 수법을 쓰거나, 한 명이라도 대상자를 끌어오기 위해 무리한 영업, 거래 등이 있어 왔다.

'토사구팽'이라는 입장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될 당시 정부가 시설을 세우고 인프라를 갖추는 대신 개인이나 법인이 요양서비스 시장에 진입하도록 유도했다. 정부는 실버산업의 장밋빛 전망만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수익을 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니 소규모 센터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상이몽'을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사실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 운영주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책입안자 입장에서는 진입 문턱을 낮추는 것이 유리했다. 온라인 속성강좌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개인이 작은 사무실 하나 만으로 문을 여는 사례가 많았다. 빨리 레드오션이 됐고 사업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생존이 절박하다 보니 이들에게 봉사정신이나 복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즉, 사업자들의 수익 기대와 정부의 입장은 처음부터 동상이몽이었고, 이제 이혼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방문요양센터를 둘러싼 논란에는 건보-방문요양센터-요양보호사 간의 불신이 깔려있다. ​

센터장들은 고객 한 명에 대한 서류만 수 십 가지, 3년에 한번 하는 평가를 받으려면 몇 달을 서류에 매달려야 하고,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가혹한 처분을 받게 된다. 툭하면 규정을 바꾸고, 신고, 환수 등으로 운영이 힘들다.

그래서 '꼼수'는 사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갖추게 된 생존기술. 반면 건보에서는 많은 사업자들이 부정청구를 하고 있는데 이를 다 환수 할 수도 없고 해서 일정 비율을 환수대상으로 정해 둔다고 한다. 고양이와 쥐의 아옹다옹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분야에는 불신이 전제돼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건보는 지난 해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운영하면서 3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재정 압박이 심하다는 것도 충분히 고려한다. 하지만 조금 더 운영의 묘가 있었으면 좋겠다.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공적 보험이며 국민이 내는 보험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이다 보니, 서비스제공자에게도 공적인 역할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공공성 담보는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져야 할 과제인데, 소규모 센터의 퇴출이 정답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소규모 센터 다음에는 조직적이고 심화된 기업형 비리와 부딪히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즉 못이 튀어나왔다고 무조건 망치를 들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이러한 논란의 궁극적 피해자는 어르신과 가족들이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 눈에 요양시설은 어르신을 학대하고 정부 돈을 빼돌리는 구조악으로 비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을 요양시설을 모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떳떳하지 못하게 된다.

요양시설 비리 때문에 요양시설 전부를 문 닫게 할 수 없다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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