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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생맥주'의 낭만은 사라질까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전통시장에서도 생선 한 마리를 사는 고객과 한 박스를 사는 고객에게 대우가 달라지는데, 맥주 1만 병 파는 업소와 10병 파는 곳을 똑같이 대우하라는 건 말이 안되지 않나요?"

국세청이 다음달부터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주류 제조·수입업체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도소매업체도 함께 처벌키로 가이드라인을 정하자, 주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이 발표되자, 주류 관계자들도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며 성토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주류업체는 앞으로 전국의 1천164개 도매상에 규모와 지역에 상관 없이 모두 같은 가격으로 제품을 납품해야 한다. 재고가 많다고 가격을 낮춰 납품하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없고, 제품을 '덤'으로 끼워주는 것도 불법이다. 광고판촉물도 5천 원 이하로 제한되며, 개업하는 점포에 주류 행사를 지원하고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것도 금지된다.

 [사진=롯데주류]
[사진=롯데주류]

그동안 주류업계는 제조·수입업체들이 도매업체에 일정 자금을 지원하고 판매를 계약하거나, 현금성 리베이트를 30% 가량 제공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또 법인카드로 매출을 발생시켜주고, 공과금 등 업소 비용을 대납하는 행위도 암묵적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그동안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이 약해 불법 리베이트가 만연했다.

이같은 주류업계의 관행에 국세청이 칼을 빼들었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개정안으로 중소상인과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는 내용도 올라와있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은 주류회사로부터 수수료, 대여금, 외상매출 등의 명목으로 현금이나 주류 등을 제공받지 못하면 영업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저임금과 임대료가 이미 급격하게 올라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주류업체 지원금까지 끊기면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으로 일부 자영업자들의 갑질 문화가 개선되고, 리베이트라는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가 사라질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소비자 피해도 예상된다. 리베이트가 없어지면서 이익이 줄어든 도매상이 소매점 납품 가격을 올리고, 그 인상분이 동네 식당이나 주점에서 자연스레 소비자 판매가격 인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주세 개편안'으로 내년부터 맥주와 막걸리 과세 체계가 종량세로 바뀌면서 업소에서 많이 찾는 생맥주와 병맥주의 세금 부담이 커진 상태다. 생맥주와 병맥주의 세 부담이 지금보다 1ℓ당 각각 445원, 16원 올라 가격 인상이 예고된 상황인데, 이번 개정안까지 더해져 생맥주·병맥주는 물론 전체 주류 제품의 판매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맥주 가격이 인상되면 치킨과 함께 맥주를 홀짝거리며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낭만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맥주의 비싼 가격 부담으로 주점에서 술 마시는 것을 회피하다보면 업소 폐점률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주점업 프랜차이즈 폐점률은 2017년 말 기준으로 13.9%를 기록, 외식업계(10.9%)나 치킨(11.2%)보다 높다.

국세청은 이달 20일까지 업계 의견을 수렴한다고 나섰지만, 1개월여 만에 개정안을 시행키로 해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년 유예기간을 주고 시행한 제약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때와 비교하면 성급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세청이 '가격 통제'로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점은 시장 논리에도 위배된다. '규모의 경제'를 인정하지 않고,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국세청의 바람대로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공정한 영업 경쟁이 이뤄지고, 리베이트로 허비됐던 수천억 원의 자금이 신제품 개발과 소비자 복지 향상에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이상만 좇아 수백만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시험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위험한 발상에 불과하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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