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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작가의 러브레터] 말년병장
2009년 03월 16일 오후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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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포크레인 없이 집을 짓겠다며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느라고 구슬땀을 흘리던 지난 여름, 삽질을 못하는 나는 그냥 그늘에 앉거나 잣나무에 매어놓은 해먹에 누워서 그이가 일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레저용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던 그가 어느 날 말했다.

-당신은 아무리 봐도 영락 없는 말년병장이야. 타고난 말년병장이라니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더니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군대에서 전역날짜를 받아놓은 말년병장은 완전히 열외거든. 군생활 말년에 사고가 잘 나기 때문에 그러는거야. 부대에서는 어떤 힘든 일도 시키지 않고 그저 날짜가 빨리 지나가서 무사히 제대해 주기만 바라고 있는거지. 말년병장은 웬만해선 장교들도 건드리지 않는 특별한 존재야.

부지런히 땅을 고르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득 고등학교 때의 체육시간이 생각났다.

우리 체육선생님은 좀 짓궂은 데가 있는 분이었다. 대체로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여고생들을 닦달하는 방법으로 체육시간마다 ‘선착순!!’을 외치며 우리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운동장에 집합하자마자 구령대 앞에서 농구골대 있는데 까지 100여미터를 달려갔다 오게 하면서 꼴찌로 오는 놈들 다섯명을 잘라서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때리곤 했다.

아파서라기보다는 엉덩이를 맞는다는 치욕감 때문에 아이들은 죽기 살기로 달리기를 했지만 꼴찌는 늘 있게 마련이었다.

워낙 달리기를 싫어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는 나는 꾀를 냈다.
선생님이 선착순을 외치면서 구령대에서 내려와 카우보이처럼 아이들을 몰아댈 때 슬그머니 열에서 빠져나와 구령대 뒤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첫 번째 주자가 구령대 앞에 도달할 때쯤이면 선생님은 꼴찌들을 잡으러 열 뒤로 달려가고 나는 그때 얼른 구령대 뒤에서 나와 어영부영 앞에서 서너 번째 도착열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다섯 번 쯤 선착순을 하고 아이들이 다 파김치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달리지 않고 안전하게 엉덩이를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만 나의 속임수가 들통 나고 말았다.
나름대로 예리한 데가 있는 선생님은 다른 애들과 달리 늘 고른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수상해서 유심히 보신 모양이었다.

선생님의 눈초리에 딱 걸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36계 줄행랑을 쳤다. 걸리면 최소 중상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역시 잔머리를 굴려서 교실로 안 가고 양호실로 갔다. 양호 선생님에게 달리기 하다가 어지러워서 왔다며 침상을 차지하고 얼른 누워버렸다.

평소에도 꾀병으로 양호실 신세를 잘 지는 단골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두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체육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커다란 서울우유 한 병을 사들고 교무실로 찾아가 싹싹 빌었다. 선생님은 결국 허허 웃으시며 머리에 꿀밤 한 대를 먹이는 걸로 넘어가 주셨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쓸데 없는 일이나 재미 없는 일에 힘 빼는걸 선척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었다.

조회시간에 운동장에 서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교장선생님의 재미없는 훈화를 듣는 것 또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특히 더운 여름날이나 추운 겨울날은 구름 쳐다보면서 공상에 잠기는 걸로도 이 시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조회시간이면 영락없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픽 쓰러져서 선생님에게 들려서 양호실로 직행하는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었다.그런 아이들은 그 다음부터 조회시간에 운동장에 나오는 것이 면제되곤 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어지럼증을 느끼는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지만 어지럽다고 생각하고 쓰러지면 된다는 것을. 다행히 얼굴이 하얗고 창백한 편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가끔 빈혈이 있느냐고 묻기도 하던 터라서 픽 쓰러지는 일이 그다지 부자연스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몇 번 머릿 속으로 상상을 해보고 나서 드디어 전신에 힘을 빼고 그 자리에 푹 주저 앉았다.

예상했던 대로 담임선생님이 놀라서 달려오셨고 나는 정신을 잃은 채로(?) 선생님에게 안겨서 양호실로 가게 됐다. 양호선생님이 손발을 주물러 주시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자 겨우 눈을 뜨고 가련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 보았고 선생님들은 매우 다행스러워 하셨다.

그 뒤로 그렇게도 바라던 대로 조회시간에는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공상에 잠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열외자로서의 인생은 그 뒤로 쭉 계속되었다. 귀찮은 일이 생기면 나는 잔머리를 굴려서 대열에서 이탈했고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

결국 나는 직업에 있어서도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조직이나 단체의 간섭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를 선택했고, 불안정성과 외로움이라는 댓가를 지불하는 대신 자유를 얻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말년병장처럼 열외자로 지내기에 아주 적합한 직업이다. 방송작가는 다른 스탭들과 호흡을 맞추는 협업이긴 해도 자기의 역할만 제대로 해내면 누구의 지시를 받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비교적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

방송작가협회라는 단체가 있긴 해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협회의 행사에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내밀 정도다.

개중에는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작권 관리와 원고료 협상 따위를 대신 해주기 때문에 회비를 내고 있을 뿐이지 단체 생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말년병장으로 살아가는 것이 완전히 몸에 배어있는 셈이다. 실제의 말년병장은 곧 제대를 하고 사회초년생으로 박박 기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제대하지 않는 말년병장이다.

누군가 나더러 지금이라도 제대를 하고 사회의 시스템 속에 편입해서 살라고 하면 나는 펄쩍 뛸 것이다.

언제까지나 말년병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일이 없는 오늘,나는 천정을 쳐다보며 빈둥거리고 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며뺑돌뺑돌하는게 당신은 영락없는 말년병장이야.

*'뺑돌뺑돌'이란 '빤질거린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인 모양이다.

))
/문영심(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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