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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덕의 실리콘밸리 바라보기]실리콘밸리와 한국기업②


사발면·김치를 위안으로 삼는 기업들

한 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멘트로 한국의 문화와 음식, 기술에 자부심을 갖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한국적인 것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것이 아니면 먹히지 않는다'는 명제가 정설이 돼버린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사발면은 여전히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유명세 때문에 가짜 제품이 심심찮게 나돌기도 한다. 한국 사발면의 위력은 기업들의 기술 전시장에서도 진가(?)를 발휘하지만, 씁쓸한 측면이 있다.

애써 준비해온 각종 장비와 자료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잘 통하지 않고 전시장은 지켜야하니, 부스 뒤에서 사발면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한국 기업인들의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사발면 하나로 힘을 내며 오후 시간 제품 전시에 당당히 임하는 기업인들을 바라보노라면 애처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스에 스스로 찾아오는 상담자가 별로 없어 답답해하는 마음은 이해할만 하다.

해외 기업인들에게는 한국회사 전시부스의 모습이 기이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샌드위치나 햄버거 혹은 일본식 도시락도 아닌 이상한(?) 음식을 먹으며 눈웃음치는 한국 기업인들의 표정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발면 헤프닝'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때론 해외출장 시 작정을 하고 사발면같은 준비물을 챙기는 일이 없지 않았다.

문제는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할 수 없다는 동질감과 함께 부스 내에서 즐겁게 어울리는 한국 기업인들이 지나가는 방문객을 향해 친절한 웃음을 지어주는 일에는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면 매우 이상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외 전시장을 보면 참관객이나 구매자들에게 자사 제품과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그저 멋적은 웃음으로 영어 인쇄물 한 장만을 쓰윽 건네주는 한국 기업인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러한 행동은 어차피 잘 통하지 않는 영어와 몸짓으로 대화하기보다, 나중에 연락을 주면 적극적으로 회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의지가 수많은 부스를 지나치는 구매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명함도 받아놓지 않으면서 상세한 설명을 하기보다, 현지언어를 구사하는 아르바이트생 또는 파트너에게 모든 걸 일임하고 한국인 관람객이 나타나기 전엔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

몇 년 전 산호세의 한 전시장에서 일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개미투자자'들로부터의 인기를 얻으며 제품 개발에 성공한 한국 모 회사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이 회사 영어 안내문엔 오자, 탈자와 함께 의미전달이 잘 안 되는 표현이 적잖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마케팅 활동 없이 부스를 지키던 담당자들이 갑자기 부산을 떨기 시작한 것은 본사 임원이 투자자들을 이끌고 나타난 때였다. 이들은 '물주'들에게 자사 제품을 열심히 설명하며,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얼마 후 이 회사 홈페이지엔 해외 전시회 참여 활동을 알리는 내용이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게시됐다.

이 회사가 외국 구매자 또는 고객사들과 얼마나 많은 상담 실적을 올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필자가 지켜본 모습은 '실리'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마케터들이 보기에 발전적인 비즈니스는커녕,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전시장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은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여타 해외 경쟁사에 비해 여전히 한 수 아래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들이 몇 번의 전시 참여로 해외 수주를 따내기는 해외 기업들보다 더 어려운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한국 협·단체들은 회원사들의 발전적인 마케팅을 돕는 일에 소홀히 하면서, 해당 전시회에서 수천만 달러 규모의 상담 성과를 올렸다는 이상한 발표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명함과 영어 인쇄물, 그리고 홈페이지에 표시된 자사 영문이름과 제품명이 서로 일치되지 않는 회사. 대·소문자 구분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콤마, 마침표 등 표식에 일관성이 없는 회사. 그런 회사들을 회원사로 모아 각종 정부자금을 전시회 참가비로 지원해준 협회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면서, 엉터리 영어 안내문을 만들고 골프와 소주파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우리의 실정이 아닌지 뒤돌아볼 때다.

/김홍덕 세미컴 대표 column_hord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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