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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없앤 금융소비자법…"차포 뗀 법안" 비판


징벌적 손배제·집단소송제 빠지고, 과실 입증책임 범위도 축소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발의 10여년 만에 소위를 통과하면서 법제화의 9부 능선을 넘었다.

하지만 아직 축포를 터트리기엔 일러 보인다. 그간 금소법 쟁점으로 꼽혔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집단소송제·판매자 입증 책임 부분이 의결 과정에서 빠졌거나, 일부만 담겼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중요한 내용이 모두 빠졌다며 제2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막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DLF 비대위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DLF 비대위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징벌적 손해배상제·집단소송제 제외…설명의무 위반 시에만 입증책임

금소법은 금융 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10여년 동안 다른 현안에 밀려 좀처럼 논의되지 못하다가, DLF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 보호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지난 2017년 발의된 정부안을 보면 ▲설명의무·부당권유행위 금지원칙 등 위반에 대해 수익의 최대 50%까지 부과 ▲금융투자상품 판매과정서 적합성, 적정석 원칙 위반에 대해 과태료 부과 ▲적합성,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소송 시 고의·과실 입증책임을 판매업자로 전환 등이 담겼다.

이외에도 금융상품으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 확산 방지 등을 위해 '청약철회권'·금융위의 '판매금지명령권' 근거 신설이 포함됐다.

여야 각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도 4개나 된다. 의원안엔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보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피해자 중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는 집단소송제가 담겼다.

반면 정부안엔 일부 손해배상 책임만 규정됐을 뿐, 집단소송과 관련된 내용은 담기지 않은 게 두 법안의 차이다.

그간 시민단체는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를 확실하게 막기 위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는 지난 21일 법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요구한 부분을 삭제했다. 그간 계류된 5개 법안을 합친 수정안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는 모두 빠진 한편, 입증 책임 전환 부분도 '적합성·적정성 원칙·설명의무 위반 시'에서 '설명의무 위반'만 담겼다.

국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난 소위 때 제기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에 대한 반대의견이 이번 소위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며 "그 쟁점을 해소하지 않으면 도저히 의결할 수가 없으니, 일단 통과에 의의를 두기 위해 해당 내용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 달 24일 열렸던 법안소위에서 일부 위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김 의원은 "엄격한 손해를 입은 범위 내에서만 (배상이 이뤄지도록) 민법이 돼 있다"라며 "법이 확 도입돼 속 시원해졌으면 좋겠지만,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법체계는 자꾸 꼬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제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혜택을 다 주자는 것도 우리 소송법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어떤 특정인이 더 연구해서 필요할 때 소송을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덜컥 도입하면 자기의 책임과 상관없이 승패가 결정돼버린다"라고 지적했다.

입증 책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원고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고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주 지난하기 때문에 그냥 결과가 생기면 다 책임지라는 식으로 운영이 될 것"이라며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금융기관은 무서워서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없는 것 보다는 낫지만…시민단체 "알맹이 쏙 빠져"

시민단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빠진 금소법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이번에 처리 된 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중요한 내용이 모두 다 빠진 사실 상 '차포 뗀 법안'"이라며 "특히 증권 관련 사안에는 집단소송제가 이미 도입이 돼있고, 그마저도 금융기관의 보호를 위해 최대한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례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선 이 정도라도 있어야 대응을 할 수 있는 만큼,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금융위가 추진할 DLF 후속대책에도 차질이 생겼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는 애초에 금융위 법안에 담기지 않았지만, 원안에 담겼던 '적합성,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 시 입증책임을 판매업자로 전환'에서 적합성·적정성 원칙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간 일부 DLF 투자자들은 시중은행들이 상담과 설문을 통한 적격 투자자 분류가 아니라 사후 서류 보완을 통해 고위험 투자 상품에 적합한 '적격투자자'로 만드는 등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해왔다. 금융감독원도 현장 조사에서 그러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은 "이번 사태를 보면 서류상엔 소비자가 이해했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 소비자는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존재했다"라며 "의결된 법엔 설명의무 위반 시에만 판매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한다고 했는데, 과연 정치권이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고 고민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에 알맹이가 쏙 빠지는 바람에 제2의 DLF 사태가 발생해도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덧붙였다.

소위를 통과한 금소법 앞엔 정무위 전체회의, 법사위, 국회 본회의라는 관문이 남아있다. 하지만 의원들 의견이 만장일치를 이뤄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곳이 법안소위인 만큼, 사실 상 9부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금소법이 연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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