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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세일즈맨에서 클라우드 선구자로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CEO

[아이뉴스24 김국배 기자] 지금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편화된 사업 모델처럼 여겨지지만 1999년만 해도 반응은 달랐다.

당시 세일즈포스는 '노(No) 소프트웨어'라는 메시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시장에 등장했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SW), 즉 설치형 SW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처음 기존 SW기업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세일즈포스는 가장 빨리 성장한 5대 SW회사이자, 세계 1위 고객관계관리(CRM) SW업체가 됐다.

이 세일즈포스를 창업한 이가 마크 베니오프다. 세계 최대 데이터베이스(DB) 회사 오라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터닝포인트는 인도 여행이었다. 창업 후 20년만에 그는 50억 달러의 자산가로 우뚝 서면서 '클라우드 분야의 선구자'가 됐다. 스니커즈를 사랑하고 명상이 취미인 기업가로도 그는 알려져 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CEO [사진=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CEO [사진=세일즈포스]

◆오라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터닝포인트 된 '인도 여행'

베니오프 CEO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에 자질을 보였다. 14세에 '저글링하는 법'이라는 SW를 개발해 75달러에 판매하고, 15세 때는 아예 리버티 소프트웨어라는 이름의 게임 회사를 차렸다. 그는 이 회사에서 게임 개발·판매를 통해 한달에 1천500달러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오라클에 스카우트돼 입사했다. 입사 첫해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고, 입사 3년차인 26세 때 역대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할 만큼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후 13년간 오라클의 성공을 도왔다. 오라클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당시 래리 엘리슨 CEO의 뒤를 이어 오라클의 CEO가 됐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거침없던 그의 인생이 바뀐 건 인도 여행이다. 오라클에서 근무한 지 10년째 되던 해 그는 안식 휴가를 떠나 하와이와 인도에서 다섯 달을 머물렀다. 오라클을 그만두고 창업을 할지, 오라클 내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때 '포옹하는 성녀'로 알려진 성직자 마타 암리타난다마이(Mata Amritanandamayi)와 만남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녀는 직업적 야망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창했고, 그는 두 개의 가치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베니오프 CEO는 "사업을 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 중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두 가지 가치관에 모두 맞춰 성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뒤로 그는 내로라하는 직장인 오라클을 버리고 집앞 좁은 원룸에서 세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세일즈포스를 창업한다. 베니오프 CEO는 '동반성장'이라는 원칙과 신념을 고수했다.

향후 세일즈포스가 도입한 '1-1-1 모델'에서도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자본의 1%, 제품의 1%를 사회에 환원하며 전 직원의 업무시간 1%를 자원봉사에 할애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지난해 미국 포춘지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세일즈포스를 꼽은 핵심이다. 현재는 5천개 이상의 기업이 이 모델을 도입했다. 베니오프 CEO는 아내 린 베니오프와 함께 올해 3천만 달러를 주거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아마존서 사업 아이디어…'다윗' 자처하며 공격적 마케팅

그가 찾아낸 길은 기업용 SW를 전기나 수도처럼 필요할 때 인터넷을 통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기업용 SW는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설치가 까다롭고 유지 보수 비용도 높았다. 하지만 기존 SW업체들은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오라클에서 일했던 그는 누구보다 이 문제를 잘 알았다.

그러다 그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힌트를 얻었다. 거액을 들여 SW 라이선스를 살 게 아니라 월 사용료를 내고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 해지하는 방식.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시작이었다.

스스로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을 자처한 세일즈포스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존 SW시장의 강자들에 싸움을 걸었다. 모든 마케팅, 이벤트, 고객 커뮤니케이션에서 '노 소프트웨어'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전 직원이 '노 소프트웨어' 배지를 만들어 부착하는가 하면, 대표 전화번호를 '1-800-NO-SOFTWARE'로 바꾸기까지 했다.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SW업체들은 '설치형 SW는 끝났다'는 그의 생각이 틀렸다며 세일즈포스의 파격적인 슬로건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업용 SW시장을 뒤엎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베니오프 CEO는 세일즈포스를 보란 듯이 성장시켰다. 월 65달러라는 저렴한 비용은 물론 기존 유지보수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판매량을 증가시켰다.

세일즈포스는 2004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2013년 10만 개 이상의 고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지난해 말 기준 15만여 개 기업이 세일즈포스 SW를 사용한다. 작년 매출은 105억 4천만 달러(약 12조 5천억원)로 4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고, 시가총액은 150조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1억9천만 달러에 미 시사주간지인 '타임'을 인수해 눈길을 끌었다.

김국배 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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